'Bohemian Rhapsody in 2009'에 해당되는 글 312건

  1. Belfast Caslte 2009.09.10
  2. Belfast Taxi Tour Part 2 - Republicanism 2009.09.10
  3. Belfast Taxi Tour Part 1 - Unionism 2009.09.10
  4. Carrick-a-Rede 2009.09.05
  5. Finally, Got Arrived at Giant's Causeway 2009.09.05
  6. Dunluce Castle 2009.08.30
  7. Oh, Dear.. 2009.08.30
  8. Carrickfergus Castle 2009.08.30
  9. Coincidence 2009.08.12
  10. Gloomy Belfast 2009.08.12














시청 앞에서 내려 맑은 날의 시청을 찍어주고
바로 Belfast Castle로 고고~


Belfast Castle로 가는 길. UoU가 보인다.

어디서 내리는지 몰라 한참을 지나쳤다. -_-;
사실 좌측에 표지판을 봤었는데 그게 그게 맞나 싶어서
맞을까 아닐까, 내릴까 더 가볼까 하는 뻘생각이 머리를 지배해서;;

하루짜리 표를 구입해서 별로 상관은 없다만
그래도 오늘 Edinburgh 가는 거 생각하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다 볼 수 있는데..

다시 城으로 향하는 정류장으로 돌아와 걸어 올라갔다.

야이 젠장할 언덕 뭥미 헉헉.











상기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저작권사에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쓰였고 상업적인 용도가 없습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는데
.

등짐에 랩톱까지 있어서 힘들었다.

성에 들어가기 전 문 옆에서 서성대는 직원에게
티켓 가격 물어봤는데 공짜!!란다.
헉, 굿~





들어서니 조그만 가든에 꼬맹이들이 잔뜩 있다.
소풍 왔나?




요놈 말하나?












여기도 고양이.


바닥도 고양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의 역사.








건물 안에서 바라본 Befast.





건물 안은 딱히 뭐 볼 건 없어서 아쉬웠긴 했지만
공짜니까 다 이해한다.



이제 시내로 돌아가자.
,
그 다음은 Cepar Way에 있는 Peace Lines,
구교와 신교 사이를 마치 베를린 장벽마냥 갈라놓은 곳에 갔다.





가이드가 벽에 메시지 하나 남기라고 했지만
낙서하는 거 안 좋아해서 할 생각이 없었는데
펜까지 주면서 갔다오라는데 거절하기 그래서 '평화 平和' 남기고 왔다.

근데 平에 점 반대로 찍었어.
제대로 못 배운 티가 여기서 드러나는 군.
제길, 부끄럽다.

헐, 우리나라는 平이렇게 쓰는데 일본이랑 중국은 내가 쓴 글씨처럼 쓰는 듯?
난 틀리지 않은 듯? - 27/06/2013 추가



이 벽화는 Google Street에서 찾아냈는데
내가 써놓은 부근은 못찾겠더라.
아마도 다른 그림에 덮인 듯 하다.

그리고 담 넘어가서 Bombay Street로 갔다.




아직도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군데군데 패인 흔적이 있고 우측에 마당도 저렇게 보호망을 설치해놓았다.


Bombay Street는 1969년 북아일랜드 폭동당시 신교도[Protestant/loyalist]들이
구교도[Catholic/nationalist]에게 불을 지른 몇 곳 가운데 한 곳이다.






본의 아니게 돌에 비친 나.










5살 짜리와 4살 짜리도 신교도와 영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누굴 위한 싸움인가...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상 Clonard Martyrs Memorial Garden에서.
뒤에 내가 타고 다녔던 택시가 비치는 구나.



다음으로 이동한다.











다음으로 간 곳은 Sinn Féin이라는 정당의 건물.

지난 6월인지 7월인지 유럽 의회 총선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다수당이 되었단다.
본인의 여행 시기는 4월이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이 어쩐 일로
이런 내용이 제대로 잘 번역이 되어있는지 링크 걸어본다.
Sinn Féin



건물 옆 벽화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쏭달쏭 하지만 남자란다.

뭐하던 분인지는 그림에 나와있고
감옥에서 단식 농성을 전개하다가
그로인해 1981년 5월 5일 농성자 가운데 가장 먼저 사망했다.

1981년 3월 1일 이 분은 단식 농성을 시작했고 다섯 가지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
첫째, 수의囚衣를 입지 않을 권리;
둘째, 감옥에서 일 하지 않을 권리;
셋째, 다른 죄수들과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권리, 교육적, 오락적 모임을 가질 권리;
넷째, 주당 1회의 면회, 편지, 소포 허용;
다섯째, 시위를 통해 감형이 취소된 것을 복권.
이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위키피디아 영어버전 보면 된다.

다음으로 이동.




Manchester의 순교자들. 아일랜드의 흙으로 데려오자.


Bush까. 親米=아이들 살육


좌측은 Belfast 택시 회사 광고-_-;
중간은 Sinn Féin 소속의 정치인이자 IRA 멤바였던 Martin Meehan.
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의 일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첫번째 인물이며 감옥에서
the Troubles[게일어 Na Trioblóidí] 기간 동안 18년간 있었다.
우측은 Euskadi[País Vasco]의 독립을 바라는 듯?


Bush야 쿠바에서 껒여!!


Frederick Douglass, 미국의 노예 폐지론자이자 연설가, 작가.


이스라엘 껒여!!





다음은 Falls Road 가운데 한 곳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St. Peter's Cathedral 근처에 있다.

이 곳은 反米, 소수민족 독립 지지에 관한 벽화가 많았다.

이 곳을 마지막으로 약 한 시간 여에 걸친 택시 투어 끝.

영어를 어설프게 알아들어
뭔가 제대로 느끼지 못함이 아쉽긴하지만
유익한 시간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차량을 정차하고
계속 주위를 살피며 사주경계를 해대는 통에
뭔 일 일어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 갖지 않을 수 없었지만
뭐 전혀 탈은 안일어났고 처음 도착한 곳에선
나 이외에도 여러 대의 택시를 보았다.
,
31일.

오늘은 Taxi Tour 하는 날.
아침 먹고 William한테 택시 투어한다고
다시 언급했더니 택시회사에 전화 건다.

한 20~30분 정도 기다리라고 해서
옷 입고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도착.

London에서 1년을 살면서 한 번을 안타봤는데
여기서 Black Cab을 탈 줄이야...

더구나 London 말고 Black Cab이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아무튼 차에 올라 어떤 투어를 원하냐고 해서
음? 난 당연히 벽화 보러 가는 건 줄 알았는데
뭐뭐 있냐고 물으니 Historical Tour였나?
역사적인 건물 돌아다니는 것과
Political Tour라고 정치/종교적인 투어가 있다했다.

나야 당연히 후자를 선택.
기사 양반은 뭐 이것 저것 설명해주면서 벽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차를 멀찌감치 대놓고 벽화마다 이것 저것 설명해주면서
사진 찍으러 갔다 오라고 했다.

왜 이렇게 멀리 세웠지..하는 의구심과 함께
나는 일단 사진 찍으러 출발.




가만히 이 그림을 보다가 문득 여기 나온 큰 아저씨 그림을 보아하니
Firenze에 있는 Plus Florence 호스텔 직원이 갑자기 생각났다.



Hopewell Crescent라는 도로다.



이 벽화에 있는 사람은 사람을 잘 죽여서(?)
'Top Gun' 이라는 별명이 붙은 Stevie McKeag.

24/Sep/2000, 집에서 죽은채로 발견되었다.
얼굴은 심하게 멍들었으며, 석궁 화살이 근처 벽에 박혀있었다.
초기엔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부검 결과 그의 죽음은 진통제와 코카인의 과다 복용으로 나타났다.

그의 지지자 일부는 계속하여 Johnny "Mad Dog" Adair를 비난하였고,
Adair의 패거리가 McKeag의 집에 침입하여
그를 죽이려고 많은 양의 코카인을 강제로 그의 목으로 쳐넣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이 시기, 그는 C Company의 지도부와는 소원해진 상태였지만,
조직의 어린 멤버들로부터 영웅적인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McKeag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벽화가 칠해졌다.

그 벽화가 위의 이 벽화인 듯 하다.


2011년 현재 이 그림으로 바뀐 듯 하여 Wikipedia에서 퍼왔다.




1969년 북아일랜드 폭동에 관한 벽화란다. [영어 해석이 아니다.]





Talavera 전투 : 반도 전쟁 가운데 하나다.

반도 전쟁은 나폴레옹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는데
이에 저항하여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를 보길 권한다.
영어로 볼 사람은 Wikipedia로 고고~


아래 그림은 전통적으로 7월 12일을 기념하는 The Twelfth'
[혹은 'Orangemen's Day', 'Orangefest' in Belfast]를 축하하기 위해
지역 사회가 모였던 Malvern St.의 아치를 묘사하고 있다.







이 벽화를 설명해주면서
저 가운데에 총 겨누고 있는 사람이
니가 움직이는 곳마다 쫓아가며 조준한다고 했는데

처음에 이걸 잘못 이해해서 저기 벽화를 지나쳐
더 들어가면 어디 안보이는 곳에서 여기 사람들이
총으로 널 겨누고 있다고해서 쥰내 쫄면서 돌아다녔다. -ㅅ-

나중에 총 겨누는 거 봤냐고해서
음?? 못봤다고 했더니 다시 차 끌고 데리고 가줘서 그제서야 이해를;;


위 벽화에 대한 설명.


이런 걸 보니 안쫄 수 있나..






이쪽은 왜 이래... 뭐야..나 무서워..

아까 총 얘기 잘못 이해해서 무서워서 못들어갔다.


그림에 써있다만..William Bucky McCullough다.
1981년에 아일랜드 민족해방군[INLA]에 의해 죽었다.
※INLA는 2009년 10월, 더 이상 무장 투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깃발.


이 양반도 설명 안해준 듯.








역시나 그림에 이름이 나와있다만 이 사람은 Jackie Coulter다.
2000년에 얼스터 자원군(UVF)에 의해 살해당했다.
※UVF는 2007년 5월, 무장 투쟁을 중지하겠다고 했다.




舊교도[Catholicism]를 쥰내 박해한 Oliver Cromwell.
그의 수급은 반대파의 보복을 피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다고한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Charles 1세를 지지하던 왕당파[카톨릭 교도]다.
Charles 1세는 왕권 신수설을 주장했던 왕이고
두 차례의 내전 끝에 Charles 1세는 사형당하고 왕정이 폐지되고
Oliver Cromwell을 위시한 공화정이 생겨났다.


국적이 네덜란드라 오렌지 공이라 불리우는 William 3세.

William 3세는 England 의회와 연합하여
James 2세를 퇴위시키고[명예혁명]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스코틀랜드에선 William 2세로 즉위.

의회는 오렌지 공의 즉위의 조건으로 권리장전을 내세웠는데
이는 의회 정치 확립의 기초가 되었고 후에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림에 나와있는 1690은 James 2세의 군대를 물리친
Boyne 전투[게일어 Cath na Bóinne]가 일어난 해이다.
,
Carrick-a-Rede,
흔들거리는 나무 다리로 유명한 곳이다.

20~30분을 달려 도착.

비는 역시나 계속 내려제낀다.
내려서 티켓 오피스로 가는 길에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이런 씌앙!!

내 앞선 미쿡인 언니야가 티켓 구매를 하려는데
몇 푼 아껴보자고 그룹으로 왔다고 얘기했다가
15인 안모아졌다고 성인 티켓 사야된다길래
즉석에서 모아봤으나 아쉽게 14명 지원으로 각자 따로 티켓 구입;

사실 다리 건너로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굳이 티켓을 구입하지 않아도 됐다.























여튼 설렁설렁 비 맞아가며 다리에 도착.





한 번에 8명까진 갈 수 있다는데
다들 한 번에 한 명만 오르길래 나도 기다렸다.




바로 아래 건널 다리 왼쪽이다.



한 손엔 카메라, 한 손은 로프를 잡고
지나가기 시작.


직접 찍은 동영상이다.
720p 지원.

고소공포증 좀 쩌는 내가
이상하게 이 다리는 별로 안무섭더라.









다리를 건너 2분이나 걸었을까?
뒤로 넘어가지 말라고 붙어있는 표지판.

...

젠장 입장료는 순전히 다리 건너는 값이군.


건너지 말라는 표지판 뒤에 있는 풍경.

이제 숙소로 귀환인가.















Carrick-a-Rede를 끝으로 투어는 끝났다.


지도.

+보정한 사진 보기
,
아기다리 고기다란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던 메인 목적지, Giant's Causeway.

일단 재빠른 중식 후 서둘러 채비했다.
중식 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호텔 앞 주차장에서 보이는 Portballintrae.

오메..이 내리막 길 좀 보소..
내려 가는 것도 내려가는 건데 올라올 때 어쩌나 그래..







내려가면서 사진 몇 장 찍어주고 육각 기둥을 찾아 계속 전진.

전방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저기군..





























막상 왔는데 뭔가... Impressive한 건 없고
그냥 조금 신기하네..육각기둥.. 뭐 이런 느낌?

사진 몇 방 찍다가 시간이 없는 고로
후딱 전방으로 고고.



앞에 보니 절벽에 육각 기둥 모양이 있다.
가는 길엔 버스에서 오는 길에 틀어준 DVD에서 봤던
왕발[Giant's Foot]이 있었다.


Giant's Foot.







육각 기둥 절벽에 도착해서 사진 좀 찍으려고 기다리는데
제기랄 다들 포즈 잡고 계속 찍고 있다.
심지어 나보다 더 늦게 온 사람들도!!

꽤나 기다려서야 사진 찍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마음에 안들어서 지웠..다. 썅!!

앞으로 계속 가서 코너를 돌았더니
길이 막혀있다.


두둥!!



날이 맑으면 못갈 것도 없어보였다만
오늘은 날씨가 개차반이라 가다가
진짜 누구하나 미끄러질 것 같았달까.
뭐 그러니 아예 통행을 차단시켜놨겠지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뛰었다. -_-;
아깐 언덕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번에는 위로 가보기로 했다.



으아 이 지옥의 계단들!!
뛰어왔는데 날 죽일 참이냐!!

앞에 커플이 설렁설렁 여유있게 사진 찍어 가며 있길래
나도 뭐 여유있는 척..하며 사진 찍고 速步로 걸었다..;







늦을까봐 똥줄타게 부지런히 왔더만
나보다 늦게오는 양반들도 몇몇 있었다.

에잉..


지도.

+보정한 사진 보기
,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Old Bushmills Distillery라는 양조장.

입장하려면 돈 든다고 해서 그냥 바깥 구경 좀 하다가
추워서 양조장 입구에 들어가 쉬면서 일행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 다음 도착한 곳은 Dunluce Castle.
북아일랜드에 있는 파괴된 중세 시대 성 가운데 가장 넒은 것 중 하나란다.
야이..지금 시간이 오후 한 시가 넘었는데
대체 Giant's Causeway엔 몇 시에 갈 거냐!!

파괴되고 흔적만 살짜기 남은 성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이동





내가 찍은 사진은 영 그지 같은데 검색해보니 이거...
북아일랜드의 Dunnottar Castle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런 멋진 곳을 2분 남짓 밖에 둘러볼 수 없었다니
너무도 애석할 따름이다.

-내가 찍었던 앵글은 좀 구린데 렌트로 이동할 땐
근처 주차장에 주차 후 조금 더 접근하여
다양한 앵글로 찍으면 정말 멋진 화면 건질 수도 있을 듯 싶다.-

다시 북아일랜드에 가게 된다면 차량 렌트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닐 거다.
물론 이 성을 다시 보기 위해서!! 렌트를 하는거지!!
,
한 시간 여를 더 달려 조그만 마을에 왔다.

이동 중에
Giants Causeway Hotel에서 점심 먹을 건데
미리 리스트 짜 가지고 가면
식사 준비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먹고 싶은 사람은 고르고 안 먹고 싶은 사람은
어차피 곧 도착할 마을에서
요기를 때우면 된다고해서 굶을까 하다가
그래도 여기와서 뭐라도
한 번 씹어보려고 쇠고기 버거 골랐다.

다시 마을 얘기로 돌아와서
이 마을은 Winston Churchill이 소유했던 호텔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슨 초등학교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못알아들었다....에잇!! :'(





여튼 여기서 아일랜드, 영국 여행 최대의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으니
사진 좀 찍다가 부두 옆 방파제/돌 끝으로 가서
사진 찍으려고 발을 내딛었는데...미끄덩~

툭.

헉..
카메라에 달려있던 끄네끼가 떨어지면서
카메라가 돌에... 떨어졌... 크헉.. T_T

으엉~~~~~~~~~~~~~~~~~~
빌어먹을 £60짜리 카메라 끄네끼는 떨어지고
£300가 넘는 카메라는 그대로 돌에 사정없이 때려박아 주시니
내가 미끄러져 아픈 것과 옷 버린 것은 둘째치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이시여!!

어째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카메라 산지 한 달도 안됐단 말이다!!
한 달이 다 뭐냐!! 17일만에 불상사라니!! T_T

그래도 불행중 다행인지 렌즈 부분과 액정 부분은 멀쩡해서 다행.
카메라의 상처는 내 마음에도 상처를 남겼지만
돌이 그래도 평평한 모양이라서 생각외로 흠집이 크진 않았다.
그래도 내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다. T_T


넘어진 그 장소에서.


흔적.

전의를 상실해 죽음을 목전에 둔 군바리 마냥
나의 마음은 이미 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지.

...
..
.




그래도 사진은 찍고 가자.

크리티컬 히트를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북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의 지폐가 따로 있다.
4개의 은행에서 각각 발행한 4 종류의 지폐가 있다.
위의 지폐는 그 중 한 곳인 Northern Bank에서 발행한 지폐이다.
물론 잉글랜드에서 쓰이는 여왕이 나오는 지폐도 사용된다.
참고로 스코틀랜드에선 3 종류의 지폐가 발행된다.


Glendun Viaduct 위에서.
Glendun Viaduct 사진은 별도로 링크를 걸겠다. 


Loughareema. 다른 말로는 Vanishing Lake.


동전은 따로 만들지 않는다.
좌로부터 젊은 시절의 여왕, 중년의 여왕, 근래의 여왕.
,
3월 30일
Giant Causeway 가는 날.

전날 돌아와서 거실에서 TV 보면서 인터넷하다가
12시 넘어 방에 들어왔나? 여튼 그러니 누가 자고 있다.

어라?

Cockney 아저씨는 분명 다른 숙소였는데??
누군지 이불 뒤집어쓰고 있어서 모르겠다.

여튼 자고 일어나 아침 먹고 나오니
무슬림 언니야가 주방으로 들어오네??
여기 다니는 학생인가?

각설.

Youth Hostel로 고고싱.

출발 시각보다 좀 일찍 왔더니 아직 차도 없다.

호스텔 건물에 딸려있던 여행사에 사람들 몰려있길래
나도 눈치껏 따라서 있었다.

그러다 큰 버스가 와서
기사가 티켓 검사하고 탑승했다.

출발 직전 다시 한 번 티켓 검사했는데
나보고 티켓 컨펌 안했다고 다시 가란다.

야이...그럼 아깐 왜 들여보내줬냐 이 $#&%$%!!

그래서 여행사에 후딱 갔다 들어오고
정시보다 약간 딜레이된 시간에 출발했다.

그런데 이노무 버스가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Belfast 내 이곳 저곳에 승차장이 더 있는 모양이다.

Jury's Inn과 Hilton Hotel을 거쳐 드디어 출발.

사람 쥰내 많다. 십라..
운전사도 사람 되게 많다고 투어 후
제 시간에 모일 수 있도록 협조 바란다고 했다.



첫번째 도착지는 Belfast 근교의 Carrickfergus Castle이다.

Wikipedia의 글을 어느정도 발번역해서 올려본다.

이 성은 1928년까지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아일랜드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건물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현재는 간척때문에 단지 1/3만이 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성의 3/4이 물에 둘러싸여 있어서 전략적으로 유용했다.

- 기원
Carrickfergus 성은 1177년 John de Courcy가 동부 Ulster를 점령한 뒤 본부로 삼기 위해 세웠고
1204년에 또 다른 노르만 정복자인 Hugh de Lacy에 의해 축출 될 때까지 통치를 했다. 

-영국의 통치
이 성이 영국의 공식적인 기록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1210년,
국왕 John이 성을 포위하고, 당시 Ulster 최고의 전략적인 주둔지를 장악했을 때였다.
위의 John은 Magna Carta에 서명한 그 John "Lackland"다.

동쪽 탑의 2층 방은 훌륭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중으로 둘러싸인 창 때문에 예배당으로 여겨진다.
입구 통로 위의 리브 볼트, 총안銃眼 그리고 입구의 거대한 쇠창살문은 나중에 추가되었다. 

그 시작은 1248년에 죽어 1250년 경에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한
Hugh de Lacey에 의해서였으며, Henry 3세에 의해 끝이 났다.

1333년, Ulster 백작의 지위를 잃은 뒤
성은 아일랜드 북쪽에서 정부의 주요 주거지와 행정 중심지로 남았다.

북쪽에서 잉글랜드의 영향이 미약해 졌을 때인 9년 전쟁(1594-1603)의 초기에는 
왕의 군대는 마을의 항구를 통하여 공급 및 유지되었다. 
그리고 1597년 인근 지역은 Carrickfergus 전투의 현장이 되었다.

1690년, Schomberg 장군은 성을 장악했다.
1690년 6월 14일, William 3세가 처음 아일랜드에 발을 내딛었다.

1760년, 마을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은 후, 
François Thurot가 이끄는 프랑스 침략자들에게 투항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과 마을을 약탈한 뒤 떠났지만 the Royal Navy에게 잡힐 뿐이었다.

-나중의 이용
1797년, 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포로 수용소 및 감옥이 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 때에는 격렬하게 방어했다.
1811년에 사용된 22문의 포 가운데 동쪽 포대에 여섯 문의 포가 남아있다.

한 세기 동안 화약고와 무기고로 유지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엔 주둔지와 군수품 창고로,
제 2차 세계대전 동안엔 방공호로 사용되었다.

오래된 기념물로의 보존을 위해 영국군에서 새로운 북아일랜드 정부로
성의 소유권을 넘겨줄 때인 1928년까지 750년 동안 지속적으로 주둔시켰다.

현재는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저기 위에 보이는 군바리는 인형이다.

William 3세의 동상이 있었다.



William 3세는 England and Ireland의 국왕이었으며,
Scotland에서는 William 2세로 불리고 있다.
또, 네덜란드 출신이라 Prince of Orange란 속칭이 있다.

이곳은 William 3세가 1690년 6월 14일 처음 아일랜드에 발을 내딛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 동상은  William 3세의 상륙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Carrickfergus Borough Council에 의해 세워짐.

대충 사진만 남겨주고 이동.
,
남의 대학 구경할 게 뭐 있다고 찾아가냐는 주의이긴 한데
대학 근처에 Botanic Gardens Park라고
공원도 있고 박물관도 있고 해서 쫄래쫄래 나섰다.


Union Theologaical College.





사진의 Queen's University Lanyon Building을 찍고 있는데
왠 이상한 양반이 나를 쳐다보고 가다가
내가 계속 건물 사진 찍고 있으니까 갑자기 나한테 접근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하길래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안녕' 이란다.

헐퀴, 한국말을 할 줄 알다니..
어떻게 할 줄 아냐고 하니까 아는 사람 중에
한국인인데 여기 사람과 결혼해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단다.

그래놓고 뭔 이상한 얘기를 잠깐 하다가
나보고 펜이랑 종이 있냐고 물어보더니
없다고 하니까 자기가 갖고 있던 이상한 종이에 뭔 글을 막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적기를 5분이나 지났을까.
나 시간 없다고 고만 적으라고 말할까 말까하다가
말 안하고 계속 기다린 나도 이상하고
뭔지도 모를 이야기를 계속 적고 있는 아저씨도 이상하다.

나중에 William에게 물어보니 Doesnt make sense란다.
자기도 반 밖에 모르겠다고 그 중에 반은 Belfast 출신 사람들이란다.

그렇게 그 아저씨랑 헤어지고 나서 Botanic Garden Park에 갔다.


Belfast 출신의 수리 물리학자 겸 엔지니어.
William Thomson, 1st Baron Kelvin (또는 Lord Kelvin)


인상적인 조각.


사진의 온실이 The Palm House.


위에 찍은 사진 반대편.





The Palm House에 들어가보려 했지만 문 닫았다.

!!


다양한 색깔의 꽃들.


개나리.


오홋, 이것은 무엇인가.




위의 사진에 들어가면 양쪽으로 이렇게 조경(?)을 해놨다.


이건 동백꽃이냐?





한 바퀴 쭉~ 돌고 나서 Ulster Museum에 가려고 했는데
여기는 아예 공사중이라 접근을 차단했다.

!!!!

이런 젠장 -,.-

그래서 별 수 없이 내일있을 투어 모임 장소에 찾아가기로 했다.
투어는 Belfast Youth Hostel 앞에서 이뤄진단다.


Youth Hostel 가는 길에 있던 Crescent Church.

사실 숙소를 Youth Hostel에 잡을까 했는데
HostelBookers에서 본 바,
지금 묵기로한 숙소 평이 워낙에 좋아서 말이지..
Youth Hostel은 평은 안좋기도 했고.

여튼 도착해서 Youth Hostel 숙소 사진 찍으려고 하는데
또 현지인이 말을 건다.

움찔.

어디서 왔냐고 일본?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태권도.'란다.

오...

북아일랜드 어떻게 생각하냐길래
난 Dublin에서 왔는데 여기 많이 춥다고 했다.
정치, 종교적인 얘기는 할 것이 못되고 그럴 능력도 역시 없다.

London에선 먼저 말 걸어주는 이 하나 없어
누가 말걸어 주면 반갑다는 느낌보단 경계심이 크게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여기가 공식 Youth Hostel.

위치 확인도 했고 아직 해는 지지 않았고 해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에 아까 Queen's University에서 만났던
이상한 양반 또 만났다. -,.-;;

이번엔 어디 박물관 얘기를 하면서
거기에 영화 'Back to the future'에 나왔던 차가 있단다.
근데 그 영화를 안봐서 난 잘 모른다. -_-;
그리고는 무슨 이상한 말을 또 하기 시작하는데..
뭔가 수식어가 엄청난 말을 해서 너무 길어 이해못하겠다고 하곤
나 지금 가야한다고 하고 헤어졌다.

가는 길에 William이 유명하다고 소개해준 The Crown Bar가 보이는구나.
하지만 딱히 술 마실 계획은 없는지라 그냥 밖에서 사진 한 방만.




이건 무슨 건물이더라..

以北으로는 더 이상 지도에 추천되어 있는 장소가 없길래 시청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Marks & Spencer 건물.
London에 있는 건물과는 다르게 뭔가 분위기 있게 생겼다.
옆엔 London에서 볼 수 있는 Black Cabs.


시청과 옆에 딸린 관람차.

Belfast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곳이 아마 예가 아닐까 싶다.
날씨가 꾸리꾸리해서 영 그렇긴 하다만 일단 사람이 없는 것이
사진 찍기 좋은 찬스!!

사진 몇 장 남기고 오늘은 여기서 이만~
,
열차는 달리고 달려 마침내 Belfast에 도착했다.

나는 이미그레이숑 오피스를 찾았지만 그딴 건 없었다.
그냥 Infomation Centre를 찾아 헤멨지만 그딴 것도 없었다.

뭐지? 써놓고 없는 이런 개같은 경우는??
밖으로 나온 뒤 다시 들어가서보니 아까 지나쳤던
책자 몇개 진열되어 있는 이 곳이 바로 Information!!

야이...딴 건 다 필요 없고..공짜 지도나 내와 이것들아!!
지도가 없다. 뭐야..지도도 없는 이런 곳이 어떻게 Information이라 할 수 있지!!

뭐 숙소 위치야 이름 대라면 정확히는 모른다만
대충 어디에 박혀있는 지 정도는 알고 있고
또 예전에 Verona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을 겪어서 딱히 뭐..후후후

일단은 숙소를 향해 고고싱~

역에서 나와 좌측으로 쵸큼 가니 갈림길,
또 다시 쵸큼 가서 나오는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으로
그리곤 남쪽으로 쭈욱~~~~ 가야하는데...

영 가는 길이 찝찝하다.
가는 길이 어째 번화가하곤 전혀 상관 없는 듯 하다.
더구나 흐린 날씨도 도시의 우울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이런 분위기.                                                                                 이미지 출처 : Google Street View

여차저차 숙소가 있는 도로까지 왔는데
뭔가 이상하네...간판에 하나도 안보인다.

집집마다 확인하다 보니 창문에 보이는 숙소의 이름.

'헐퀴, 설마 이건가?'

혹시나 싶어 다른 집들도 다 확인했지만 그 집이 맞는 것 같다.

문을 두드리니 술에 약간 취한 듯한 아저씨 한 명이 나온다.

여기 호스텔 맞냐니 맞단다.
근데 주인이 없어서 잠깐 들어와서 기다리랬다.

그 아저씨는 호스텔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고
집안에선 신호가 잘 안터져서 잠깐 밖에서 전화 걸고 온다고 했다.

근데 아저씨 말 알아듣기 정말 힘들다.
말 끝마다 Aye 하는데 Scottish인가??

전화를 끝내고 온 아저씨는
지금 주인이 다른 호스텔에 있다고 그리로 가자고 하는데
그 전에 뭣 좀 마시겠냐고 해서 커피 달라고 했다.

커피를 타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너는 어디서 왔냐길래 남조선 사람인데
London에서 1년동안 영어 공부했다고 했더니
London 어디서 생활했냐고 물어서 말해주면 알겠나 싶어
그냥 Central 조금 서쪽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내가 혹시 Scottish냐고 물으니
황당하다는 듯 내가? 하며
자기는 English라면서 London 출신이랬다.
English까지는 제대로 들었는데
London 가운데 어디 지명을 얘기해줬는데
전혀 못알아들어서 갸우뚱하고 있었더니 Cockney란다.

잉??

London에서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Cockney를
예서 다 보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어이쿠야 이런 저런 얘기하고 주인이 지금
다른 호스텔에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사이더를 마신 탓인지 취한 것 같지는 않아보였지만
술냄새가 좀...

살짝 헤매긴 했지만 잘 찾아간 다른 숙소에서
주인인 William과 인사를 하고 방을 받았는데
전날 북아일랜드와 폴란드 간 축구 경기 덕에
어제 Polski들이 잔뜩 묵었다 가느라 아직 정리가 잘 안됐다면서
정리된 방 하나를 배정해줬는데 그게 하필이면 꼭대기 -,.-

꾸역꾸역 캐리어 끌고 올라가 짐 풀고
주변에 돌아다닐만한 곳 추천 받고
내일 Giant Causeway Tour에 관해 물어본 뒤
일단 근처 Queen's University로 갔다.


일반 가정을 개조한 Hostel이다.

상  호 : Lagan Backpackers
주  소 : 121 Fitzroy Avenue, Belfast, County Antrim, Northern Ireland
우편번호 : BT7 1HU
전화번호 : 0044 (0)28 951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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