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은 Cepar Way에 있는 Peace Lines,
구교와 신교 사이를 마치 베를린 장벽마냥 갈라놓은 곳에 갔다.





가이드가 벽에 메시지 하나 남기라고 했지만
낙서하는 거 안 좋아해서 할 생각이 없었는데
펜까지 주면서 갔다오라는데 거절하기 그래서 '평화 平和' 남기고 왔다.

근데 平에 점 반대로 찍었어.
제대로 못 배운 티가 여기서 드러나는 군.
제길, 부끄럽다.

헐, 우리나라는 平이렇게 쓰는데 일본이랑 중국은 내가 쓴 글씨처럼 쓰는 듯?
난 틀리지 않은 듯? - 27/06/2013 추가



이 벽화는 Google Street에서 찾아냈는데
내가 써놓은 부근은 못찾겠더라.
아마도 다른 그림에 덮인 듯 하다.

그리고 담 넘어가서 Bombay Street로 갔다.




아직도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군데군데 패인 흔적이 있고 우측에 마당도 저렇게 보호망을 설치해놓았다.


Bombay Street는 1969년 북아일랜드 폭동당시 신교도[Protestant/loyalist]들이
구교도[Catholic/nationalist]에게 불을 지른 몇 곳 가운데 한 곳이다.






본의 아니게 돌에 비친 나.










5살 짜리와 4살 짜리도 신교도와 영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누굴 위한 싸움인가...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상 Clonard Martyrs Memorial Garden에서.
뒤에 내가 타고 다녔던 택시가 비치는 구나.



다음으로 이동한다.











다음으로 간 곳은 Sinn Féin이라는 정당의 건물.

지난 6월인지 7월인지 유럽 의회 총선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다수당이 되었단다.
본인의 여행 시기는 4월이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이 어쩐 일로
이런 내용이 제대로 잘 번역이 되어있는지 링크 걸어본다.
Sinn Féin



건물 옆 벽화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쏭달쏭 하지만 남자란다.

뭐하던 분인지는 그림에 나와있고
감옥에서 단식 농성을 전개하다가
그로인해 1981년 5월 5일 농성자 가운데 가장 먼저 사망했다.

1981년 3월 1일 이 분은 단식 농성을 시작했고 다섯 가지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
첫째, 수의囚衣를 입지 않을 권리;
둘째, 감옥에서 일 하지 않을 권리;
셋째, 다른 죄수들과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권리, 교육적, 오락적 모임을 가질 권리;
넷째, 주당 1회의 면회, 편지, 소포 허용;
다섯째, 시위를 통해 감형이 취소된 것을 복권.
이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위키피디아 영어버전 보면 된다.

다음으로 이동.




Manchester의 순교자들. 아일랜드의 흙으로 데려오자.


Bush까. 親米=아이들 살육


좌측은 Belfast 택시 회사 광고-_-;
중간은 Sinn Féin 소속의 정치인이자 IRA 멤바였던 Martin Meehan.
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의 일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첫번째 인물이며 감옥에서
the Troubles[게일어 Na Trioblóidí] 기간 동안 18년간 있었다.
우측은 Euskadi[País Vasco]의 독립을 바라는 듯?


Bush야 쿠바에서 껒여!!


Frederick Douglass, 미국의 노예 폐지론자이자 연설가, 작가.


이스라엘 껒여!!





다음은 Falls Road 가운데 한 곳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St. Peter's Cathedral 근처에 있다.

이 곳은 反米, 소수민족 독립 지지에 관한 벽화가 많았다.

이 곳을 마지막으로 약 한 시간 여에 걸친 택시 투어 끝.

영어를 어설프게 알아들어
뭔가 제대로 느끼지 못함이 아쉽긴하지만
유익한 시간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차량을 정차하고
계속 주위를 살피며 사주경계를 해대는 통에
뭔 일 일어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 갖지 않을 수 없었지만
뭐 전혀 탈은 안일어났고 처음 도착한 곳에선
나 이외에도 여러 대의 택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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