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가서 저녁 먹고 다시 나와 Musée du Louvre에 왔다.


20시 34분인데 적당히 해질녘일세. 




Cour Carrée의 동쪽으로 보니 이쪽은 아직 괜찮네.


이건 서쪽.

금요일이라 야간개장도 하지만 난 내일 가기로 해서 들르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들어가봤자 한 시간도 못보고 다시 나와야 되니께..


Académie des Beaux-Arts란다.


Pont des Arts 위에서 찍은 사진.
일부러 의도하진 않았는데 Académie des Beaux-Arts 크기가 비슷하다.


Pont Neuf.
사진 우측에 건물이 늘어선 곳이 Île de la Cité.


Pont des Arts를 건너지 않고 다시 되돌아와서 담은 사진 1.


사진 2.

다시 Louvre로 돌아왔다.








Louis XIV.
Gian Lorenzo Bernini가 만들었다.


이 사진은 마치 내가 저 커플을 찍어주고 있는 모습이로다.


Arc de triomphe du Carrousel.

오늘 일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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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밖으로 나와 Cour d'honneur를 담았다.




여긴 뭐하는 전시실이더라?

6분 후에 다시 카메라를 꺼내 찍은 사진이..


이 검.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ㅎㄷㄷ한 디자인.


금 두른 포.
포신 녹겠네 ㄷㄷ


Napoléon Ier sur le trône impérial par Jean-Auguste-Dominique Ingres en 1806.


이것은 무엇을 접사한 사진인가.
제복이겠지?




Cour d'honneur의 북쪽을 바라본 사진.








1920년부터 1945년까지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NSDAP) 당기 겸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그냥 Nazi 나치]
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Deutsches Reich [독일 제국*] 국기.

*우리는 이 시기를 나치 독일이라고 한다.

Hakenkreuz는 Swastika, 卍만자를 뜻하는 말이다.
불교에선 卍, 힌두교에선 역만자卐를 뜻한다.

위 국기, 이미지를 사용한다거나 제복을 입는 것은
Bundesverfassungsgericht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독일에선 사용이 금지되었다.

독일 뿐만이 아니고 Österreich, Magyarország, Polska, Česko,
France, Brasil, Україна, Россия 外 여러 국가에서 불법이다.

독일은 저렇게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고 후속조치를 제대로 취했는데
왜국은 잘못에 대해 반성은 커녕 욱일기를 당당하게 해상자위대의 깃발로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몰염치한 족속들이라 하겠다.


아따 요놈은 K-111하고 형제구만~
근데 별이 다섯개나 있네 ㄷㄷ.


Köln의 Hohenzollernbrücke와 주변은 박살났지만
Kölner Dom는 훼손시키지 않은 사진.

Paris도 Adolf Hitler가 불태우라고 지시했지만
Dietrich von Choltitz가 명령을 거부하고 순순히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서울이나 New York같이 초고층 빌딩으로 점령당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Charles de Gaulle.
장군 겸 Forces françaises libres 지도자.
후에 프랑스 제5공화국을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에 당선~


Cour d'honneur 남쪽.


Napoléon 1세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사진을 끝으로 밖으로 나섰다.


북쪽 출구.


뒤돌아 찍은 Invalides 북면.


다 나왔다.




Esplanade des Inval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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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뭐 이런 저런 무기 장구류를 전시해 놓았는데
규모는 그리 크게 보지지 않았지만 오밀조밀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전시되어 있는 물건의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기사의 갑옷과 마갑.


디테일이 대단한 헬멧.


디테일이 존니스트 대단한 흉갑.
갑옷에 상처나면 우울해질 듯 싶다. -_-;


총.


체인메일.




이건 어린이용 갑옷이냐. -_-a 


청동 헬멧.


포.


단촐한 이 갑옷은 Louis 13세의 것이란다.


기사의 갑옷과 마갑.






얜 뭐얔ㅋㅋㅋㅋㅋㅋ








실제로 이렇게 한 무더기 꾸려놓으면 대단할 듯.






생식기가 유달리 큰 남정네의 갑옷이었나보다.

아니면 본인의 그곳은 소중하기에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




손잡이 디테일.


뿌~ 하는 물건인 듯.


노궁.




손잡이가 멍멍이.






대청제국大淸帝國 6대 황제 건륭제乾隆帝의 갑옷.
이게 왜 여깄지?

조금 더 밝은 사진은 여기로.


이건 누가 입었을꼬?




손잡이 저래서 부숴질까봐 제대로 쓰겠어?


칼도 저러면 저 부분 강성이 약하지 않을까?

하긴 오야붕이 최전선에서 칼싸움하진 않을테니 뭐.. 그냥 폼이겠다.


이번엔 일본에서 가져온 장구류다.


지쟈쓰 아래에 있는 해골이 의미하는 바는?






얜 또 뭐 이렇게 생겼어 ㅋㅋ


불쌍해서 못때리게만든 헬멧 ㅋㅋㅋ


가지가지한다.


방패 1.


그 위에 있는 방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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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âteau de Versailles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집안에 화사禍事가 일어났다.
어찌 이런 일이... 하아..

이 얘기는 생략하도록 하고,
Invalides‎역에서 내려 어제 사진 찍은 그 공원을
다시 끼고 돌아 Église du Dôme으로 갔다.

Hôtel des Invalides는 현재는 전쟁 관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 이 건물의 용도는 전쟁 용사들의 병원 겸 은퇴 후 요양시설이었다.

Musée de l'Armée.


Empereur des Français, Napoléon 1세의 형인 Joseph-Napoléon 1세의 묘.












Rosetta 석石.
원본은 British Museum에 있는데 왜 여기에 모조품을 만들어놨지?






Ferdinand Foch의 석관.

1차 Marne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1918년에 Maréchal de France [프랑스 원수]로 진급한 것은 물론
결국 연합국 최고 지휘관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 시기 Paris 근교에서 치른 2차 Marne 전투에서
독일군의 Kaiserschlacht를 [1918년 춘계공세 혹은 Ludendorff 공세]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18년 11월 11일, Foch는 Deutsches Reich [독일 제국]의 휴전 요청을 수락했다.

Foch는 독일 제국이 다시는 프랑스에 위협을 제기할 수 없는 평화 협정 조건을 지지했다.
Treaty of Versailles [베르사이유 조약] 후,
"이건 평화가 아니다. 이건 20년 간의 휴전이다." 라는 그의 말은 예언이었음을 입증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20년하고도 65일 뒤에 발발했다.

1919년 그는 영국의 Field Marshal [육군 원수]에 임명되었고,
1923년에는 Marszałek Polski [폴란드 원수]에 임명 되었다.


제단.






Henri de La Tour d'Auvergne의 석관.
Vicomte de Turenne.
Maréchal de France en 1643 et maréchal général des camps et armées du roi en 1660.


Napoléon 1세의 석관.
Louis Visconti가 디자인했다.


그 위의 돔.


다시 Ferdinand Foch의 석관.

아래로 내려갔다.


작품의 특별한 제목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위 돋을새김이 뜻하는 바는

'Napoléon 1세의 유해를 프랑스로 가져오기 위해
Saint Helena 섬, Geranium 계곡의 Napoléon 1세 무덤에 모인 Joinville 왕자'정도 되겠다.


1840년 12월 15일,
아버지 Louis-Philippe 1세에게 Napoléon 1세의 관을 건네주는 Joinville 왕자.
위와 아래 둘 다 François Jouffroy가 만들었다.


Protection accordée au Commerce et à l'Industrie.


Cour des Comptes.
"Je veux que, par une surveillance active, l'infidélité soit réprimée et l'emploi légal des fonds publics garanti."




Napoléon 2세.
Napoléon 1세와 황후 Marie-Louise d'Autriche 사이에서 난 아들로
Napoléon 1세의 유일한 적자이다.

Waterloo 전투에서 패한 Napoléon 1세의 퇴위 후
6월 22일에 칙명을 내려 Napoléon 1세의 네 살 난 아들,

Napoléon François Charles Joseph Bonaparte를
Napoléon 2세로 선포하고 제위를 승계받게 하도록 하였으나,

7월 7일에 연합국이 파리를 점령하고
Louis 18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지지자들의 바람을 재빨리 끝맺었다.

그 때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었고,
아버지의 퇴위로 자신이 황제로 선포되었다는 사실은 아마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1818년, Herzogs von Reichstadt [Reichstadt 공작]의 작위를 받았다.
1832년 7월 22일, Schloss Schönbrunn에서 결핵에 걸려 2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40년, 그의 유해는 Wien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는데
이것을 실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Adolf Hitler다.

그의 유해 대부분이 Paris로 옮겨졌지만, 심장과 내장은 Wien에 남았다.

심장은 Augustinerkirche, Herzgruft의 42번 유골함에,
내장은 Stephansdom, Ducal Crypt의 76번 유골함에 있다.


조각상 바로 아래에 있는 디자인.


L'église gallicane.
1682년 프랑스 성직자 선언부터 프랑스 혁명 중의 성직자 기본법까지의 시기의 프랑스 카톨릭 교회.




Travaux Publics.
"Partout où mon règne a passé il a laissé des traces durables de son bienfait."

관련한 모든 돋을 새김은 Pierre-Charles Simart가 조각했다.


Hubert Lyautey의 석관.
Résident général de France au Maroc [프랑스령 모로코의 초대 통감統監],
Ministre de la Guerre [제 1차 세계 대전 중의 전쟁대신 혹은 육군대신, 現 국방부 장관],
1921년, Maréchal de France [프랑스 원수]로 진급.


땅크~


Cour d'honneur,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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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eau de la Reine 혹은 Domaine de Marie-Antoinette라고 한다.
Marie-Antoinette를 위해 1785년부터 1792년에 걸쳐 만든 시골틱한 마을이다.

Versailles의 궁정 생활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왕비 Marie-Antoinette에 의해 1782년-1783년의 겨울에 승인 되었다.

Rousseau가 역설한 이상적인 자연 환경에서 그녀는 스스로가 왕비라는 것을 잊을만한
더욱 소박한 삶으로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은 낙원을 갖길 바랐다.

건설은 여왕이 가장 선호한 건축가 Richard Mique에게 맡겨졌고 설계는 Hubert Robert가 맡았다.

이 시골 냄새 나며 또한 농지이기도 한 이곳은
중농주의자와 계몽주의 철학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한편, 프랑스 혁명 이후 버려진
le hameau de la Reine는 세 차례 대규모 복원 과정을 가졌다.

현재의 기본 토대를 갖춘 첫 번째 복원은 1810년 Napoléon 1세 때 결정되었다.

두 번째는 1930년대, John D. Rockefeller, Jr. 의 후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Architecte en chef des monuments historiques, [譯 : 역사적 기념물의 수석 건축가]
Pierre-André Lablaude의 지휘 아래 1990년대부터 새단장되어
2006년에 'Domaine de Marie-Antoinette'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공개되었다.


Moulin.
1783년부터 1788년에 걸쳐 만들어진 방앗간은
곡식 가는데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사용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뭐 그렇다.

어떤 기계 장치나 톱니바퀴 따위는 설치 되지 않았으며, 내부 장식은 소박하고 깔끔했다고 한다.




Tour de Marlborough.
Tour de Marlborough의 원래 이름은 Tour de la Pêcherie [낚시터 탑-_-]라고 한다.






Maison de la Reine et billard.
방에 있는 여섯 개의 창문을 통해 여왕은 쉽게
일터와 마을의 돌아가는 꼴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위층엔 도서관을 포함한 다섯 개의 방이 있다.

외관은 시골 느낌 나지만, 내부 마감과 가구는 고급스럽다.
목수 Georges Jacob와 가구 장인 Jean-Henri Riesener가 만들었단다.


Moulin.




Boudoir.
Petite maison de la Reine [여왕의 작은집]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Marie-Antoinette는 혼자 혹은 친척 한두 명과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지붕은 짚이 아니라 갈대로 덮여 있다고 한다.




Maison de la Reine 뒤뜰.


Moulin.


Maison de la Reine.










Colombier.










Maison du garde.






Ancienne laiterie de préparation.






Laiterie avec la Tour de Marlborough.










네 녀석은 암탉이라 Cocorico~하고 울진 않겠구나.


Ferme.
여왕과의 계약에 의해 이 농장을 운영한 사람은
1785년 6월 14일에 Touraine에서 온 Valy Bussard라는 이로 그의 가족은 12월에 왔단다.
이런 기록도 있네 그려..


소도 키우고, 젖소도 키우고,




양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거위도 키우고, 돼지도 키우고,


오리도 키우능가!!

한 바퀴 돌았으니 이제 돌아가야제~






Petit Trianon 옆의 정원까지 돌아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찍은 사진.


Bassin du Trèfle.


Jardins du Grand Trianon에서 찍은 Bassin du Fer-à-cheval과 그 뒤 Grand Canal.

이 사진을 찍고 30분을 걸어 다시 돌아왔다.


우혐해요~


1684년부터 1686년까지 2년에 걸쳐 Jules Hardouin-Mansart가 만든 Orangerie와
뒤의 연못은 1679년~1683년에 사이에 만든 Pièce d'eau des Suisses.


Parterre du Midi의 사진을 끝으로 Versailles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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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it Trianon에서 나와 Hameau de la Reine로 가는 길에
눈에 띄는 구조물이 보여서 그리로 갔다.


Temple de l'Amour.





Petit Trianon에서 바로 보이는 작은 섬 위에 지어진 이 사랑의 신전은
1778년에 Richard Mique가 디자인하고 만든 신고전주의 양식의 구조물이다.



12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 돔으로 된 지붕 그리고 7개의 계단으로 만들어졌다.


L'Amour se faisant un arc de la massue d'Hercule.

Musée du Louvre에 있는 Edmé Bouchardon이 만든 것과 같은데
같은 사람이 복제품을 만든 것인지 새로운 누군가가 따라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 건물은 여왕의 Count Axel von Fersen을 향한
가공의 사랑 이야기를 축하하기 위해 지어지진 건물이 아니었다.
둘은 그때 당시 겨우 면식만 있을 뿐이었다.

Lady Antonia Fraser의 Marie Antoinette: The Journey라는 책에 따르면
왕과 여왕의 사랑과 수년간 연기되었던 첫날밤을 축하하기 위해 지어졌단다.

Marie-Antoinette가 결혼할 당시, [1770년]
그녀는 단지 어린 아이였을 뿐이라 첫날밤은 오랜 후에 치러졌다. [1777년]

그녀는 14살이었으나 그보다 훨씬 더 어려보였고,
Louis는 pervert[변태 성욕자-_-]가 아니었다-_-;;;;;

그는 신사였고, 그녀가 충분히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또한 절제된 태도로 신부에게 다가갔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Louis 15세가 보여줬다시피,
왕이 여자에게 매혹되었을 때의 프랑스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고모가 계속해서 심어줬다.

Louis는 아마 자신이 아주 쉽게 Marie-Antoinette에게 매혹될 것이라 생각해서 그는 자제했다고 한다.

20대 초, 그들은 그들의 관계에 대한 bonheur essentiel [필수적인 행복]을 찾았다.
그것은 모든 지옥의 힘으로도 가를 수 없는 결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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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it Trianon의 정문.


Chapelle.


Réchauffoir.


Marie-Antoinette d'Autriche, reine de France par Elisabeth Vigée Le Brun.




Grande Salle à Manger.
Cheminée 벽난로; Louis-Simon Boizot,
Buste de Marie-Antoinette; Joseph Marie Vien.


Madame de Pompadour par Charles André Van Loo.


Salon de Compagnie.
피아노는 1790년에 Pascal Taskin이 만들었나보고
하프는 Marie-Antoinette의 음악적 취향을 생각나게 한다.


Chambre de la Reine.


Cabinet des glaces mouvantes.


똥통.




Salle de billard.


La famille royale, anonyme, 1782.

그림 중앙은 Louis 16세와 부인 Marie-Antoinette.
둘 사이의 갓난 아이는 Louis Joseph, Dauphin de France.
Louis 16세 발밑의 아이는 Marie-Thérèse de France.

Louis 16세 좌측에 자리한 남녀 한쌍은
Louis 16세의 동생, Comte d'Artois, 훗날 Charles 10세.
Marie Thérèse de Savoie 혹은 Comtesse d'Artois.

세 아이는 좌부터 우로,
Charles Ferdinand d'Artois, duc de Berry.
Louis-Antoine d’Artois, duc d’Angoulême. 훗날 형식상 제위에 15~20분 간 올랐던 Louis 19세.
Sophie d'Artois.

Marie-Antoinette의 뒤에 있는 여성은
Louis 16세의 막내 동생, Élisabeth de France 혹은 Madame Élisabeth.

그 뒤에 있는 한쌍은
Comte de Provence. 훗날 Louis 18세.
Marie-Joséphine de Savoie, comtesse de Provence.

이쪽이쪽에서 알리는 인물이 다른데
세 갓난 어린이의 부모가 근처에 있지 않겠나 싶어 후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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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Trianon에서 나와서 주변을 이래저래 걸었다.




여긴 대체 어딘지 Bing 지도랑 Google 지도를 한참을 들여다봐도 못찾겠다;;
심증은 가는데 확실한 물증이 없어!


Pavillon Français.
1750년에 지어졌다. Jacques-Ange Gabrielrk가 만들었단다.
지붕 난간엔 8 그룹의 아이들과 16개의 돌로 만든 꽃병이 장식되어있다.


Petit Trianon의 북쪽.




Théâtre de la Reine.

1778-1779년에 지어진 이 극장은 유럽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훌륭한 극장이다.

Erzherzogin von Österreich는 [프 : Archiduché d'Autriche, 한 : 오스트리아 대공비]
후에 Louis 16세가 되는 Dauphin de France와의 결혼 준비에 있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녀의 어머니, 황후 Maria Theresia는 프랑스어 발음을 향상시키기 위해 프랑스 배우들을 주위에 두었단다.








Centre de recherche du château de Versailles.






Petit Pond와 Belvédère.






저 건물은 Petit Trianon.


Belvédère는 1777년에 Richard Mique에 의해 지어졌다.
Le Riche가 칠한 실내의 벽은 아라베스크 무늬로 장식 되었다.


Rocher.


La Grotte.


여기도 또 다른 출입구.


Marie-Antoinette는 동굴 안으로 대피하는 것을 좋아했단다.

1789년 10월 5일 오후,
시종이 파리의 폭도들이 Versailles로 행진한다는 소식을 알릴 때
Marie-Antoinette는 동굴 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 동안, Louis 16세는 숲에서 사냥 중이었다고 한다.

Conseil du Roi의 일부는 Versailles에서 달아날 것을 조언하였다.
왕비는 수긍했으나 왕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그의 의무라고 느꼈단다.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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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Trianon 도착 완료.



입장.


Boudoir de l'Impératrice Marie-Louise.
라고는 써있는데 이게 무슨 규방일까. 이리 작은데.


Salon des Glaces.
거울의 방.

거울과 Grand Canal의 좋은 전망은 이 방을 가장 아름다운 방으로 만들어 준다.
그건 Louis 14세가 1691년부터 1703년까지 회의실로 사용했던 마지막 방이다.

다른 대부분의 Trianon과 마찬가지로 오리지널 장식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가구는 프랑스 혁명 중에 판매되었고 Napoléon 1세가 다시 가져다놓았다.

1810년부터 1814년까지는 황비 Marie-Louise가 응접실로 사용했다.


Chambre de l’Impératrice.

원래 Louis 14세의 침실이던 이 방은
Napoléon 1세의 재위 당시, 황비 Marie-Louise가 사용하며 작은 침실과 거실 (혹은 곁방)로 나뉘었다.

모든 물품은 그때의 물건이지만 침대만은 예외로 Palais des Tuileries에서 가져왔다.
Napoléon 1세와 그의 후임자 Louis 18세가 쓰던 물건이다.


Salon de la Chapelle.

예배실로 만들어진 이 방은 Louis 14세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1691년에 거실 (혹은 곁방)이 된 후에도 그 원래의 목적을 계속 이어갔다.

우측은 Louis 15세.
좌측은 Louis 15세의 부인 Marie Leszczyńska.
둘 다 Jean-Baptiste Van-Loo의 그림.
중앙은 Charles de La Fosse가 그린 Saint-Marc et Saint Luc로 추정.


Salon des Seigneurs.
왕의 곁방, 후에 거실로 바뀜.


Péristyle에서 바라본 정문.


건물 뒤편 정원.

이제 건물 오른쪽 부분으로 간다.

Salon Rond를 지나..


Salon de Famille de L'Empereur.

이전엔 극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Louis 14세의 세 번째 침실의 곁방으로 쓰였고
후에 Louis 15세의 게임방으로 사용되었단다.


Chambre de la Reine des Belges, fille de Louis-Philippe.

예전에 Louis 14세의 캐비넷 룸으로 쓰였다.
1703년, Louis 15세에 의해 다시 합쳐져 거실로 쓰였다.

Louis-Philippe 1세의 재위 시절, 라운지로 바꿨다. [Dining room > Lounge]
그 후, 딸래미 Louise와 그녀의 남편인 벨기에 초대 국왕 Leopold 1세를 위해 방으로 바꾸었다.

1809년 Jacob-Desmalter가 Palais des Tuileries에 있는
황후 Josephine을 위해 만든 침대와 금박을 입힌 나무는 1845년에 수정 및 확대되었다.

모든 의자는 1807년, Palais des Tuileries에 있는
황후 Josephine의 Grand Salon을 위해 Jacob-Desmalter가 옮겨 왔다.

근데 언제 Palais des Tuileries에서 이리 옮겨 온 거지?




Salon de Musique.

원래는 Louis 14세의 첫번째 곁방이었고
Napoléon 1세 때엔 라운지로 바뀌었다.
그 후 Louis-Philippe 1세 때에 다마치는 방으로 바뀜.


Salon de famille de Louis-Philippe.


Salon des Malachites.
Duchess of Burgundy의 방으로 제공 되었다.

화면 중앙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과 커튼 옆의 푸르딩딩한 촛대가
Malachite[공작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방 이름을 공작석 방이라고 지었나보다.


Salon des Sources.
조금 더 밝은 사진.


Galerie des Cotelle.
Jean Cotelle는 Etienne Allegrain, Jean-Baptiste Martin과 함께 이 방에 있는 그림들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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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으로 나왔다.


Parterre du Midi.


Vase de la Paix의 한 부분.


묘하게 노홍철을 연상시키는 큰 눈과 묘한 웃음? 입벌림?


아, 끝이 안보여.


Allégorie Du Loiret.


Allégorie de La Loire.


골프 카트.
이거 타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 물론 돈 내면.


Nymphes et Zéphyr.




아.. 제대로 역광이다.


Parterre de Latone.








Tapis Vert.
혹은 Allée royale.

PELOUSES INTERDITES.
잔디 밟지 마시오.




Bassin de Flore.
Flora는 로마 신화에서 꽃과 봄의 여신이다.
Jean-Baptiste Tuby가 만들었다.


Bosquet de l'Encelade.


Fontaine de l'Encelade.
Εγκέλαδος [英 : Enceladus, 한 : 엔케라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Γίγαντες [英 : Giants, 한 : 기간테스, 譯 : 거인족]로
기간테스는 대지의 여신 Γαία [英 : Gaia, 한 : 가이아]의 아들 중 하나다.

올림포스 신들과 기간테스와의 싸움인 Γιγαντομαχία에서 [英 : Gigantomachy, 한 : 기간토마키아]
Αθηνά[英 : Athena, 한 : 아테나]에게 죽임을 당해 Sicilia의 Etna 화산 아래 뭍혔다고 한다.

Etna 화산의 폭발은 엔케라도스의 호흡이라고 전해진다.


Bassin d'Apollon.

이것도 Jean-Baptiste Tuby가 만들었다.

1636년, Louis 13세의 재위 기간에 이곳엔 이미 Cygnes라는 연못이 있었다.
그걸 Louis 14세가 호화롭게 꾸미라고 지시하여 지금의 조각을 만들어 놓았다.






다시 Tapis Vert.
혹은 Allée royale.




Grand Trianon으로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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