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테라스도 비슷하다, 두 쌍의 사자, 독수리 사이에
동쪽과 같은 종류의 다섯 석상이 있지만 제단은 없다.

그렇지만 동쪽에 비해 석상에 대한 훼손 상태가 심하기도 했고
찍을만한 공간이 안나와서 전체 사진은 찍지 않고, 못했다.


출처 : gallery.hd.org

또, Antiochus가 Apollo-Mithra-Hermes와, Zeus-Oromasdes와,
Herakles-Ares-Artagnes와 악수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돋을새김이 있다.

동·서쪽 테라스에 있는 모든 석상의 머리는 땅에 떨어져있는데
아마도 이 지역에 재앙을 가져다 온 지진의 여파가 아닌가 한다.


출처 : gallery.hd.org

서쪽 테라스에 있는 돌조각들 중, 'Commagene의 사자'로 알려진 위의 돌은 중요한 천문학적 정보를 준다.
UNESCO World Heritage Centre의 글에 따르면 '왕의 점성占星'으로 불린다고 써놨다.

돋을새김의 배경과 사자의 몸통엔 19개의 별이 있다.
사자의 목엔 초승달이 보이며, 사자의 등 위엔 세 행성-화성, 수성, 목성-이 보인다.
-Skyglobe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 천문고고학자들에 의해-
이 돋을새김은 BC 62년 혹은 61년의 7월 6일을 나타낸다고 해석됐다.

이 날의 의미에 대해 다른 의견들도 존재하는데
Adrian Gilbert는 Antiochus의 페르시아/아나톨리아 비밀 조직 우두머리로의
비밀스런 대관식을 거행한 날로 보는데 반하여,
Brown 대학의 Otto Neugebauer 교수는 Antiochus가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왕위에 오른 날이라고 여긴다.

UNESCO World Heritage Centre의 글에선 6일이 아니라 10일이라고 하였으며,
Antiochos 1세가 로마 제국에 의해 왕이 된 날이라고 한다.

근데 내 사진에선 이 사자를 볼 수 없다.
저 사자에 대한 정보를 알 리가 없었고
머리 큰 돌들에 정신이 팔려 있던 탓도 있지만 돌이 있어야할 위치에 없었다.


원래는 이 사진 시커먼 돌들이 있는 위치에 있어야 했는데 없었다.
출처 : gallery.hd.org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이봐봐.. 없다.


Tyche, 또는 콤마네게의 풍요의 여신.


左 Antiochus,
右 Herakles - Artagnes - Ares.


Zeus - Oromasdes [Ahuramazda].


Zeus - Oromasdes [Ahuramazda].


Herakles - Artagnes - Ares.


이쪽 석상은 훼손이 심하다.
얼굴만 남았음.


빙그레.


이것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내가 못찾은 걸지도..




가장 앞에 나와있는 두상이 Zeus - Oromasdes [Ahuramazda],
뒤에 있는 두상들은 左→右로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Tyche, 또는 콤마네게의 풍요의 여신
•Antiochus
•Herakles - Artagnes - Ares


Herakles - Artagnes - Ares.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삼성. 원피스에 나오는 페콤스를 닮은 듯도..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이런 유치한 짓을 나도 하다니..ㄱ-






유치의 대향연.


Herakles - Artagnes - Ares.


Zeus - Oromasdes [Ahuramazda].






석양.




저물어 간다.


점점..






저물었다.

내려오는 길에 Karadut인지
여하튼 이리 가는 방향의 한 펜션? 산장?에 내려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중에 이런 저런 이야길 하면서
일본인 아저씨였는지 서양 청년이었는지
쿠르드족 독립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은 건 아니고 돌려서 물은 것 같은데
요는 독립에 관한 것이었다.

호텔 주인의 대답은 '싫다' 였다.

자긴 쿠르드족이지만
터키에서 교육을 받고 터키에서 대학까지 나왔으며
지금 호텔을 꾸리는 데 조금도 불만 혹은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듯 했다.
민족이 무슨 상관인가 다 같이 한 나라 안에서 사는데.

여태 차별을 받아왔었긴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해한다.

저녁을 먹고 히피같은 미국 청년은
여기서 머문다고 해서 헤어지고
남은 넷이서 다시 Urfa로 돌아왔다.


오늘의 여행 경로.
Urfa에서 시계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조금 더 자세하게.
,
다음의 글은 Sacred Sites의 글을 기반으로 하고
UNESCO World Heritage Centre에서도 다소 참조하였다.

알렉산더 제국의 붕괴 이후 콤마게네 왕국을 다스린 Antiochus 1세 (69–34 B.C.)의 묘는
헬레니즘 시대의 최대 규모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넴루트 산의 묘 혹은 Hierotheseion[신성한 자리]은 콤마게네 왕국의 문명의 증거다.

이 유니크한 산 정상의 무덤은 지역의 목동들을 제외하곤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1881년 오스만 정부에 고용된 독일인 엔지니어 Charles Sester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이곳은 1953년년에야 유적의 조사가 착수되었다.

아메리카 동양학 연구소[ASOR]에 의한 고고학적 발굴은 유적의 정밀 조사와 보호 프로그램을 시행했지만
건축 방법이나 이상한 바위 언덕과 신전이 고대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거의 알 수 없었다.

콤마게네 왕국[英 Kingdom of Commagene]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뒤를 이은- 셀레우코스 제국[英 Seleucid Empire]과
파르티안 제국[英 Parthian Empire]의 국경에 자리 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BC 80년, 셀레우코스 제국의 쇠퇴와 더불어 콤마게네의 영주는 왕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내 로마의 협력자 Mithridates I Callinicus는 스스로를 왕이라 선포했으며
Arsameia에 수도를 세우고 짧은 콤마게네 시대를 시작했다.

Mithridates는 BC 64년에 죽고
그의 아들 Antiochus I Epiphanes가 26년 간 통치하며 뒤를 이었다.

그 후 콤마네게는 완전히 로마 제국에 합병되기까지
로마 제국 또는 꼭두각시 왕에게 AD 72년까지 지배되었다.

높이 50m, 직경 150m의 원뿔 모양의 봉분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하얀 석회암 자갈들로 구성됐다.

봉분에 Antiochus의 유물이 있다고 가정한 고고학자들은 드로모스를 밝혀내기 위해
거대한 원뿔 모양의 바위에 구멍을 팠지만 그들의 추정을 구체화시킬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봉분은 동, 서, 북쪽으로 세 코트와 접하고 있다.
동쪽 코트는 넓은 테라스, 다섯 개의 거대한 석상, 피라미드형 배화단拜火壇과 잔존한 몇몇 벽이 있다.


설명.


당나귀.

먼저 동쪽으로 향했다.


동쪽 테라스에서 본 산.
나무도 없고 휑하다.




피라미드형 배화단拜火壇.





동쪽 벽을 장식한 바위 조각들은 Antiochus의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 조상들을 묘사하고 있다.
각각 8~10m에 달하는 석상들은 혼합주의syncretism 원리에 따라 몇몇의 신을 구체화한다.

다섯 개의 석상 양측엔 두 쌍의 똑같이 거대한 조각이 있는데
각 쌍은 사자와 독수리로 구성되었고 양 끝에 대칭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다섯 석상은 나타낸다 [左→右]: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Tyche, 또는 콤마네게의 풍요의 여신
•Zeus - Oromasdes [Ahuramazda]
•Antiochus
•Herakles - Artagnes - Ares


원래 모습은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그림이다.       상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하였으며,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저작권사에 있습니다.
출처 : 여기


뒤의 봉분 높이가 50m, 지름이 150m.




Antiochus.


Herakles - Artagnes - Ares.


한화, 삼성. -_-;


Zeus - Oromasdes [Ahuramazda].


피라미드형 배화단拜火壇.


Tyche, 또는 콤마네게의 풍요의 여신.


Apollo - Mithra - Helios - Hermes.


빙그레. -_-;;




아, 너무나도 긴 내 다리 같으니..


북쪽은 해가 잘 안들어서 그런지 눈이 아직 덜 녹았다.


눈이랑께~

이제 서쪽으로 간당께~
,
또 얼마 안가 차를 세우는데 바위 위에 성이 두둥!!


Yeni Kale.



잠깐 내려 사진만 파파팍 찍고 바로 다음으로 이동.

커브길을 돌자마자 차를 세우더니
여기 경치 좋다며 사진 찍고 오란다.

그래서 하차.


괜찮긴 하네.













가자, 목적지로!

조금 가다보니 주차장 드나들 때 입구에 있는 바리케이드가 있다.
오홋, 티케팅을 했다.

드디어 보는가!

꼬불꼬불한 길을 좀 가다보니 차를 세웠다.

여긴 또 어디야..

들어갔다 오란다.

Arsameia Ruins.


뭔가를 잔뜩 새겨놨다.


아래만 남은 두 기둥.
Mithridates 1세 Callinicus와 Antiochus 1세란다.


아까 사진 찍은 곳이 지금 우측 하단 바위에 가려져 있는 부분이다.


난 감성이 풍부하니까 꽃도 찍었다.
며 익명의 힘을 빌어 막글 싸질러 본다.




아래로 가는 터널? 동굴?인데 막혔다.


여기로 들어갔다.
예전에 종교 의식을 하던 곳이라고 했나?

이 글 쓴다고 자료 좀 찾아봤는데
이 부분은 그냥 패스 했었더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찾긴 귀찮고.



산 위로 조금 더 올라가니 요런 터널이 또 하나 있었다.




무슨 글들을 잔뜩 새겨놓았다.
Arsameia의 설립에 관한 이야기란다.

사진이 작아서 잘 안보이네.


깊었다. 무척이나.
Lonley Planet에서였나? 158m라고 했었나..
꽤나 깊어 보이기도 하고 좁고 무섭고 해서 깊이 들어가진 않았다.


돋을새김으로 만든 Mithridates 1세와 Heracles가 악수하는 모습.
여기 안내판에는 Antiochus 1세라고 하고
Lonley Planet은 Mithridates 1세라고 하고 있다.


돋을새김은 양각이란 말을 순화하여 사용하는 갑다.
음각은 오목새김으로 순화.






아까 찍었던 Yeni Kale를 반대편에서 찍게 됐다.


정상엔 이런 나무 한 그루.









이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 그 동굴에 다시 내려가
조금 더 깊은 곳에서 플래쉬 터뜨렸으나 그래도 어둡다.


잘도 올려놨네.


Mithras 혹은 Apollo.

이제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Nemrut Dağı다.
,
Kahta였나?
어디에 내려서 점심을 먹었다.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무난한 Tavuk Şiş Kebab을 시켰을 거다.
Tavuk = Chicken

점심을 먹는데 호텔 사장이
자기도 한국에 가본 적 있다면서 터키와 다른 식사 예절에 관해서 이야길 했다.
터키에선 빈 접시는 바로 치우는데 한국에선 절대로 치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한국에서도 치운다고 했다.
그러자 아니라면서 내가 한국에 반 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보질 못했단다.

그래서 이내 대답하기를,
'난 한국에서 滿 23년 살았다긔.'

그러자 일본인 아저씨와 서양 청년이 웃었다.

이어서, 넌 무척이나 바쁜 식당에 간 것 같다고 하고
바로바로 치우기도 하지만
한국은 원래 다 먹고 손님들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치운다고 이야기 했다.

나오는 길에 음식점 사장님이
치킨집 자석 쿠폰 같은 식당 홍보 자석을 줬다.

그거 가지고 있긴 한데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정확히 어디서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Karakuş Tümülüsü.
Kadınlar Anıt Mezarı라는 말도 쓰이나 보다.

이 고분은 BC 36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몇 개의 기둥Column이 주변에 세워져있다.

원래는 기둥이 더 있었는데
로마 시대에 Cendere Köprüsü[Cendere Bridge]를 만드는데
기둥 조각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남쪽 기둥엔 독수리가[주차장 방향], 사자와 동쪽 기둥에 있다.
그리고 세 번째 기둥엔 Mithridates 2세의 여자 친족이 잠들어 있다고 새겨진 석판이 있다.










대관령삼양목장도 이런 느낌일까?













한 바퀴 둘러보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얼마 안가 정차.


오호, 경치가 좋다.


이 다리 때문에 섰다.
Cendere Köprüsü.
[英 Severan Bridge, Septimius Severus Bridge, Cendere Bridge]


경치가 좋구만 좋아.




이 기둥들을 아까 거기서 가져왔나보다.



차로 돌아가려는데 개가 잔다.


아, 왜 이 개는 하필이면 여기 있는 거야!!
아, 왜 이 아저씨는 하필이면 차를 여기 세운 거야!!

터키에서 개와의 개같은 추억들 덕에
갑자기 일어나서 물까봐 심장이 쿵덕쿵덕.


옆에선 염소들이 무리지어 이동하고 있다.
털이 개같다. 아프간하운드 말이다.



염소 사진 찍는 와중에 서양인 녀석은 개를 잘도 쓰다듬는다.
자는 애를 왜 깨우나 그래..


그덕에 일어났다.


뭘 보나? 경제를 살리자는데.


이놈 설마 양치기 개는 아니겠지?
,
오늘은 호텔 주인장의 가이드를 따라 Nemrut Dağı에 가기로 했다.

투어비 90 TL ㄷㄷㄷ..

진짜 가보곤 싶었는데 Malatiya나 Kahta로
다시 올라가는 여정을 거치는 것은 부담이 있었고

Kahta에서 누굴 찾으라는 글을 봤는데..

이거 뭐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찾냐고요..-,.-

여하튼 일행으론 일본인 어르신 한 분과
유럽인 한 명이었는데 국적이 어디었는지 기억이 안나네..

독일 청년이었나? 더치였나?

뭐,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됐고 고고싱~

차는 막 달리더니 무슨 카페 같은 곳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려서 카페 테라스로 가니 댐 등장.
Atatürk Barajı다.
수력발전도 한다.


뚜둥!!
사진엔 안보이지만 댐 뒤의 호수는 당연히 Atatürk Barajı Gölü.

터키 내에서 인공호수 가운데 가장 크고
천연 호수와 합쳐도 세 번째로 크다.


지금 서 있는 부분 아래 절벽에
양귀비가 잔뜩 피어있었는데 사진을 지웠나보다.



댐에 관해서 더 봐서 무엇하고
할 말도 없고 하니 다음으로 이동.

다음 행선지로 가다가 차를 세우더니
아저씨가 아까 그 물이 진짜 차다면서
한 번 가서 만져보라기에 가서 봤는데 진짜 차가웠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맑았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사진이 너무 적어서 뒷편이랑 같이 올릴까 했는데 Localog 입력할 때 지방이 달라서 나눠 올리게 됐다.
,
Otogar에서 내려 Balıklıgöl에 또 갔다.


Aynzeliha Gölü

이거 사이즈 얼마나 된다고 여기 안에서 뱃놀이 하라고 배도 띄운다.

Halil-ür Rahman Gölü로 가는 길에
어제 날 그렇게 부르던 한 상인이 날 또 보곤 'Go to hell!!' 이란다

날 막 불렀는데 내가 그냥 계속 못들은 척 쌩깠거든..
물건 사달라고 할까봐 그냥 못들은 척 했다.






이브라힘이라고 써있는 걸로 봐선
아브라함이랑 관련된 뭔가일 텐데 모르겠다.
[터키어로 이브라힘 = 영어, 한국어로 아브라함]









한 바퀴 스윽 둘러보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Ulu Cami로 가 사진 몇 컷 남겼다.





,
오늘은 Beehive House가 있다는 Harran에 가기로 했다.

창세기는 기원전 1900년,
Harran과 여기에 몇 년간 머물렀던
가장 유명한 거주자 아브라함을 언급한다.

Atatürk Barajı에서 출발하여 Urfa를 거쳐
이곳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수로를 따라 이동했다.

도착.

Dolmuş에서 내리자마자 청년들 둘이
자기가 가이드 해주겠다고 난리다.

아, 괜찮다고 괜찮다고 안한다고 하는데
5 TL에 해준다고 하란다.

아, 됐다고 하는데도 계속 들러붙는다.

말해도 안통하니 쌩까고 갈 길 갔더니 결국은 포기한다.

그런데 이젠 꼬맹이 새퀴들이 들러붙네..-,.-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싸면서
내 뒤로 졸졸 따라오면서 뭐라뭐라 하는데
내가 뭐 알아들을 수가 있나..;

그러다 안따라오는 듯 싶더니
뒤에서 내 엉덩이를 툭 치고는 막 낄낄 거리면서 도망갔다.

아오, 씌발 꼬맹이 새끼들!!

소리치려다가 소리 쳐 봐야
달라지는 건 없으니 이내 포기.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아저씨가
그 꼬맹이들에게 꾸중인지 잔소린지 했다.

야트마한 둔덕을 넘으니 유적이 보였다.


주거지 유적이었나?




이건 Ulu Cami와 대학의 흔적.
저 크고 사각의 Minare가 몹시 Un-Turkish 하다는데 뭐 난 잘 모르겠다.

또한 대학은 첫번째 이슬람교 대학이었단다.


Harran Kültür Evi.
[英 Harran Culture House]

목이 타서 Pepsi 한 캔 샀다.


내부로 들어갔다.


장신구.




여성 의류.










저 아저씨 너무 멋졌다.
복장에서 오는 포스가 ㅎㄷㄷ.

그래서 터키는 비싸고 해서 시리아에서 저 옷 살까 했었는데
검정색이 안보이기도 했고, 바가지 씌울까봐 못샀다. ㅡㅜ


일반 민가도 벌집 모양.


Harran Kültür Evi 입구.




이건 아마 Kale.




염소? 양?




Kale에 올라서서 바라본 민가.












새가 찍혔네.


새를 찍었네.


확대.


저건 뭐여.. 물 저장고?




연료로 쓸 똥 둥글게 만들어 말리는 중인 듯?





돌아가는 길,




이건 또 무슨 유적이더라..

,

Mardin

from Bohemian Rhapsody in 2009/Türkiye 2011. 10. 27. 15:04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인근 자미에서
아잔أَذَان‎[英 Adhan, 터 Ezan]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Mardin에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아하니 Diyarbakır에서 Mardin을 찍고
이리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이동에의 아쉬움이 다소 남았다.


파란색이 먼저 이동한 경로고 검은 색은 그 다음.

더워서 미적대다가 결국엔 가긴 갔다.

Mardin은 언덕 위에 있는 도시였다.

어디 이상한 곳에 내려서 중심부까지 여차저차 걸어왔다.
암만봐도 중심부 같진 않아서 내릴 때
Urfa로 돌아갈 땐 어디서 타냐니 저기 보이는 저곳에서 타라고 알려줬다.

돌아갈 방법은 알아놨으니 안심하고 투어에 나섰다.


보수의 흔적이 역력한 자미.
이 정도면 그냥 새 건물인 듯.




요런 옛스러운 골목을 돌아다녔다.


으흥흥흥~


우체국 건물에 들어가서 찍은
Şehidiye Medresesi와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평원.


그리고 우체국 건물.

1층이 우체국으로 쓰이고 있고 2층은 뭔지 모르겠다.
그냥 올라와서 찍었다. -_-;


Ulu Cami Hamamı.
하맘이야 자미야 뭐야..-_-a
'난 둘 돠~'인가?

나름대로 광장같은 넓은 터에 갔더니
Mardin 인근에서 일어난 결혼식 총기난사 때문에
중무장한 경찰이 무리지어 서있었다.

관련 기사 1 - BBC
관련 기사 2 - SKY
관련 기사 3 - 한겨레
Wikipedia에 실린 사건 - Mardin Engagement Ceremony Massacre



저기 위에 빨간줄 쳐놓은 곳이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난 사건이 일어난지 정확히 8일 뒤에 Mardin에 갔다.
뭐..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Internet Cafe에 가서 인터넷도 잠깐 할 겸
Kale에 어떻게 올라가는지 물어볼 겸 겸사겸사 들어갔다.

마침 Mardin 지도도 있길래 그거 하나 집어들고
어딜갈까 쳐다보곤 인터넷 하는 처자에게
Kale 가려면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 거기 못간단다.

알겠다고 고맙다고 하곤 성을 쳐다보니 군사지역인 듯 싶기도..

인근에 있는 박물관으로 입장.










새집.


좌측엔 카메라, 우측엔 새집.








화약 담는 플라스크.






디테일 쩐다.























뭐 장신구, 무기, 돌덩이 등등 소박한 규모로 있었다.


박물관 앞 공터에서 찍은 Kale.
사진 하단에 있는 Free Internet에서 인터넷 잠깐 했다.


박물관.


성을 조금 더 크게 줌.


아까 구한 지도에서 어디어디로 가면
뭐가 나온다고 해서 갔더니 교회 등장.



다시 되돌아가는 길에 바자르엘 들러 서쪽으로 가보니 뭐 이런 곳이 나왔다.


사람이 적어서 한 컷 찍었다.


이것!!


샤마란 혹은 샤흐마란Şahmaran!!
쿠르드족의 신화에서 풍요를 관장하는 지혜의 신이란다.

아오, 이름이 도무지 생각이 안나
세계테마기행이랑 걸어서 세계속으로 검색해서 어디서 나왔나 찾아봤다.

EBS 세계 테마기행 - 고대 문명의 요람, 터키 동부.
1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마르딘 [21/02/2011]

편에 Mardin이 나오니 궁금한 사람은 찾아서 볼테면 보라지.
난 Premier League 따위도 안나오는 Qook TV에서 찾아봤다. -_-;


골목.


구시가지 옆에 주거지.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평원.



해가 지고 나서야 Dolmuş를 타고 Urfa로 돌아올 수 있었다.

Urfa에 와서 Otogar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육교 옆에 그냥 세웠다.


그래서 육교에 올라가서 야경 찍는다고 한 컷.


숙소 앞에 뭐 이런 걸 달아놨길래 한 컷.
,
Şanlıurfa에 도착을 하기까지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자, 내렸는데.. 난 어디로 가야하나..

숙소 위치는 아는데 동서남북을 모르겠다. ㄷㄷㄷ
내 다음부터 여행다닐 땐 나침반을 가지고 다니던가 해야지 -,.-


카메라에 담은 Urfa 지도.
항상 이런 식으로 카메라로 찍어서 이동했다.

Şanlıurfa에서 Şanlı는
'위대한, 영광스런, 고귀한'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란다.
왜 이런 형용사가 붙었느냐 하면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려는
서구 열강에 맞서 일어난 터키 독립전쟁 당시에
서구 연합국에 맞서 싸운 Urfa 지역 민병대의 공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1984년, 터키 대국민의회에서 Urfa를 Şanlıurfa로 공식적으로 명명했다.

곁다리로 하나 적자면 Şanlıurfa의 Ş는 /ʃ/ 발음을 해야한다.
따라서 /산르우르파/가 아니라 /샨르우르파/라고 해야한다.

+곁다리 하나 더 보기

길을 잃고 언덕 꼭대기로 가다보니
오호라.. 어쨌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긴 가는 듯.

숙소에 들어가서 짐 풀고 바깥 구경 출바알~


숙소에 있던 지도도 찍어서 남쪽으로 고고싱~

일단은 최남단 Kale로 갔다.


오르는 길에 찍었나?


전망이 괜찮다.



공동묘지.

死者가 되어 Urfa를
굽어살피라는 뜻으로 이렇게 높은 곳에 만들었나?


Urfa는 노랗다.



Mevlidi Halil Camii.
혹은 Mevlid-i Halil Camisi.


안으로 입장.




사람들 사진은 모자이크.
학생들 소풍왔나?


얼굴이 작게 나와서 모자이크 안함.
이곳이 바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 입구다.
하지만 난 들어가보지 않ㅋ았ㅋ엉ㅋ
터키어로는 Hz.İbrahim makamı인 듯 하다.

이 자미 옆 공원에 가니 다음과 같은 사진이..


생선이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
고기가 너무 많아 징그러운 수준.
Gölbaşı라는 곳에 있다.

이 생선들은 님로드[혹은 니므롯]가
성자 아브라함을 불에 태워 죽이려고 했을 때,
신이 은총을 내려 불은 물로, 장작은 생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생선들은 Kutsal balıklar성스러운 생선이라 하여 잡지 않는다.

그런 고로 생선 수가 저 지경 ㄷㄷㄷ


Balıklıgöl[英 Fish Lake] 혹은 Halil-Ür Rahman Gölu.
뒤의 건물은 Rızvaniye Vakfı Camii & Medresesi.


써 있는 사람 무덤?

이름을 모르겠다.








뭔 설명인지 모르겠다.


위에 위 사진 건물 안인가?

올라가는 길에 원해서 간 것도 있긴하지만 가다보니 Old Houses가 나왔다.


인적이 전혀 없어서 을씨년스러웠던지라
사진 한 컷만 찍고 미로같은 골목을 잽싸게 나왔다.

전날 아침에 신발 신고 숙소에 돌아와 신발 벗었는데
한 30시간 넘게 신고 있었더니 냄새가....ㄱ-
내 발 냄새지만 이게 사람 발에서 나는 냄샌지 금수한테서 나는 냄샌지..ㄱ-
,

The PKK and the Kurds

from Daily Events/Issues 2011. 10. 25. 18:58
Today's Zaman이라는 뉴스 사이트에
엊그제[23/Oct/2011] 올라온 사설인데 발번역 해본다.
원문은 여기에.

The PKK and the Kurds
PKK와 쿠르드족


지난주 PKK의 공격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우리는 PKK가 터키를 도발하길 원했다는 걸 알고 있고,
우리는 그들이 정치적 진행을 멈추게 하려고 막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는 터키군이 -터키 안팎에서- 큰 성과는 없었지만
PKK를 군사적으로 파괴하기 위한 시도를 여러 번에 걸쳐 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무엇이 새로운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말하기 위해 몇 가지 알아야 할 것들이 필요하다.
첫째, PKK가 쿠르드족의 눈에 여전히 인기 있을까?
혹자는 확실히 단일체로 이뤄진 조직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쿠르드족인지 물을 것이다.
나에게 이를 아는 최선의 방법은 反PKK 데모 시위들을 찾기위해
Diyarbakır같은 쿠르드족의 도시들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종종 터키의 PKK와 스페인의 ETA를 비교하는 사람들은
바스크인들이 등을 돌리자 ETA는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어떻게 바스크 사람들은 ETA에게 등을 돌렸을까?
그들은 각 공격이 있은 후, 거리에서 대규모 데모를 하는 방식으로 반감을 표현했다.

만약 내가 무언가를 놓치지 않았다면,
나는 Diyarbakır에서 PKK에 대항하는 대규모의 -혹은 더 작은 규모의- 데모를 볼 수 없었다.
일부 쿠르드인은 아마 확실히 PKK에게 그들 참을성의 한계에 다다랐을 테지만,
만약 그들이 여전히 마음 내키지 않아 그들의 분노를 거리에 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단지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그들은 PKK에게 겁 먹었거나 아직도 그 움직임에 믿음을 준다는 것이다.

어쨌든, 24명의 터키군 사살에 따른 대규모 反PKK 쿠르드족 시민사회 움직임의 부재는
PKK의 약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주저하게 해야한다.
사견으로는 PKK는 여전히 매우 강하다.
그들은 쿠르드족의 거리에서 강한 인상을 주는 군사활동을 이끌어 낼 수 있고,
터키군에게 아주 큰 피해를 끼칠 수 있으며,
또한 쿠르드족 투쟁의 어젠다를 세울 수 있고 적절한 서포트를 지속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기울어 지고있는 테러리스트 활동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약 30년 간의 활동이 지나도 그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PKK에 대항하는 수많은 쿠르드족의 데모를 보는 것과
터키 정부가 군사적 움직임을 뿌리째 뽑는다고 말하는 걸 보는 것을 실패하는 한,
남동부에서 PKK의 탁월함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터키 정부는 여전히 PKK에 대응하고 있다.
AKP가 선수를 치지 않고 터키 인구의 다수가
까다로운 타협을 준비하는 훨씬 더 나은 일을 시작한다면
PKK는 터키에서 쿠르드족의 현안에 관한 풍조와 아젠다를 만들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로 들린다면,
우리가 물어야 하는 두번째 그리고 아마 더 어려운 문제는 PKK의 인기에 관한 것이다.

왜 쿠르드족 사이, 특히 쿠르드의 젊은 층에서 그 움직임은 여전히 인기 있을까?
쿠르드의 젊은 층에 강한 인상을 준 것은 1980년대 초에 시작한 PKK의 반란이었다.

대부분의 투르크인은 PKK는 테러조직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쿠르드의 청년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그 움직임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터키군에 맞서는 Abdullah Öcalan에게 갈채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PKK 또는 Öcalan이 없었다면,
터키 국가 안보기관은 절대 쿠르드라는 소수 민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1923년부터 1990년까지 터키에서 모든 쿠르드어와 민족성은 심하게 억압되었다.
터키 공화국은 쿠르드족을 별개의 인종 집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주장한대로,
AKP는 이전의 터키 정부보다 쿠르드인의 생활 수준과 문화적 권리를 더 향상시켰다.
그와 같은 개혁은 쿠르드족의 기대를 증가시켰다.

오늘날 쿠르드의 사람, 문화 그리고 정치적인 요구는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 뿐 아니라
İstanbul, İzmir, Mersin과 Adana를 포함한 서부의 큰 도시에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내며
불만스러워 하는 쿠르드의 젊고 더욱 더 분개하는 세대에 의해 증가되어 왔다.
쿠르드 젊은이들의 진심어린 지지가 없이는, 이 충돌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나라가 테러리즘에 직면할 때엔 민주화는 없다" 라는 지루한 기도에 호소하지 말자.


오역이 넘칠 수 있음.


*추가 설명.
Partia Karkaren Kurdistan [PKK]
쿠르드 노동당.
쿠르드인 조직으로 쿠르디스탄[터키 남동부]에서의 자치권과
보다 큰 쿠르드인의 문화, 정치적인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PKK는 현재 미국과 EU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테러 단체로 지목 되어 있다.

Euskadi Ta Askatasuna [ETA]
바스크 조국과 자유.
무장 독립 운동을 전개해 온 Basque 민족주의와 분리주의 단체.
20/Oct/2011 무장활동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Adalet ve Kalkınma Partisi [AKP]
정의개발당, 現 터키의 집권 여당

Abdullah Öcalan
PKK를 창설한 사람 중 한 명이자, PKK의 리더. 현재는 구속 수감 중이다.
Öcalan의 구속에 따른 현재 PKK의 실질적인 리더는 Murat Karayılan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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