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âteau de Versailles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집안에 화사禍事가 일어났다.
어찌 이런 일이... 하아..

이 얘기는 생략하도록 하고,
Invalides‎역에서 내려 어제 사진 찍은 그 공원을
다시 끼고 돌아 Église du Dôme으로 갔다.

Hôtel des Invalides는 현재는 전쟁 관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 이 건물의 용도는 전쟁 용사들의 병원 겸 은퇴 후 요양시설이었다.

Musée de l'Armée.


Empereur des Français, Napoléon 1세의 형인 Joseph-Napoléon 1세의 묘.












Rosetta 석石.
원본은 British Museum에 있는데 왜 여기에 모조품을 만들어놨지?






Ferdinand Foch의 석관.

1차 Marne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1918년에 Maréchal de France [프랑스 원수]로 진급한 것은 물론
결국 연합국 최고 지휘관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 시기 Paris 근교에서 치른 2차 Marne 전투에서
독일군의 Kaiserschlacht를 [1918년 춘계공세 혹은 Ludendorff 공세]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18년 11월 11일, Foch는 Deutsches Reich [독일 제국]의 휴전 요청을 수락했다.

Foch는 독일 제국이 다시는 프랑스에 위협을 제기할 수 없는 평화 협정 조건을 지지했다.
Treaty of Versailles [베르사이유 조약] 후,
"이건 평화가 아니다. 이건 20년 간의 휴전이다." 라는 그의 말은 예언이었음을 입증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20년하고도 65일 뒤에 발발했다.

1919년 그는 영국의 Field Marshal [육군 원수]에 임명되었고,
1923년에는 Marszałek Polski [폴란드 원수]에 임명 되었다.


제단.






Henri de La Tour d'Auvergne의 석관.
Vicomte de Turenne.
Maréchal de France en 1643 et maréchal général des camps et armées du roi en 1660.


Napoléon 1세의 석관.
Louis Visconti가 디자인했다.


그 위의 돔.


다시 Ferdinand Foch의 석관.

아래로 내려갔다.


작품의 특별한 제목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위 돋을새김이 뜻하는 바는

'Napoléon 1세의 유해를 프랑스로 가져오기 위해
Saint Helena 섬, Geranium 계곡의 Napoléon 1세 무덤에 모인 Joinville 왕자'정도 되겠다.


1840년 12월 15일,
아버지 Louis-Philippe 1세에게 Napoléon 1세의 관을 건네주는 Joinville 왕자.
위와 아래 둘 다 François Jouffroy가 만들었다.


Protection accordée au Commerce et à l'Industrie.


Cour des Comptes.
"Je veux que, par une surveillance active, l'infidélité soit réprimée et l'emploi légal des fonds publics garanti."




Napoléon 2세.
Napoléon 1세와 황후 Marie-Louise d'Autriche 사이에서 난 아들로
Napoléon 1세의 유일한 적자이다.

Waterloo 전투에서 패한 Napoléon 1세의 퇴위 후
6월 22일에 칙명을 내려 Napoléon 1세의 네 살 난 아들,

Napoléon François Charles Joseph Bonaparte를
Napoléon 2세로 선포하고 제위를 승계받게 하도록 하였으나,

7월 7일에 연합국이 파리를 점령하고
Louis 18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지지자들의 바람을 재빨리 끝맺었다.

그 때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었고,
아버지의 퇴위로 자신이 황제로 선포되었다는 사실은 아마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1818년, Herzogs von Reichstadt [Reichstadt 공작]의 작위를 받았다.
1832년 7월 22일, Schloss Schönbrunn에서 결핵에 걸려 2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40년, 그의 유해는 Wien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는데
이것을 실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Adolf Hitler다.

그의 유해 대부분이 Paris로 옮겨졌지만, 심장과 내장은 Wien에 남았다.

심장은 Augustinerkirche, Herzgruft의 42번 유골함에,
내장은 Stephansdom, Ducal Crypt의 76번 유골함에 있다.


조각상 바로 아래에 있는 디자인.


L'église gallicane.
1682년 프랑스 성직자 선언부터 프랑스 혁명 중의 성직자 기본법까지의 시기의 프랑스 카톨릭 교회.




Travaux Publics.
"Partout où mon règne a passé il a laissé des traces durables de son bienfait."

관련한 모든 돋을 새김은 Pierre-Charles Simart가 조각했다.


Hubert Lyautey의 석관.
Résident général de France au Maroc [프랑스령 모로코의 초대 통감統監],
Ministre de la Guerre [제 1차 세계 대전 중의 전쟁대신 혹은 육군대신, 現 국방부 장관],
1921년, Maréchal de France [프랑스 원수]로 진급.


땅크~


Cour d'honneur,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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