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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el Baba Müzesi 2012.03.10
&이제 다시 다운타운으로 돌아가긔~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에
갈색으로 된 Noel Baba Müzesi가 보이길래 방향 전환.

30분 즈음 걸으니 대강 도착.


가다가 찍은 나팔꽃.


오홋, 여기련가?

여기가 맞나 싶어 두리번 거려보니 여기가 아닌 듯.

목적지로 이동 중에 아마도 점빵에서 이런 걸 세워놨길래 한 컷씩 찍어봤다.


내가 종교인이 아니라 잘 모르겠어서 검색을 막 해봤는데
여호수아 아니면 예수로 추측이 되는데 음.. 지쟈쓰 같다.


요건 산타 클로스의 모델인 Άγιος Νικόλαος.
[라틴어 : Sanctus Nicolaus, 英 : Saint Nicholas, 한 : 성 니콜라우스]


요건 Sanctus Georgius.
[그 : Άγιος Γεώργιος, 英 : Saint George, 한 : 성 게오르기우스]
십자군, 조지아, 잉글랜드의 수호성인으로 유명하다.


동정녀 마리아로 추정한다.


요건 다시 성 니콜라우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 많은 쪽으로 가다보니 발견 & 도착.


사진 작가 : DILIN, 출처 : Wikipedia


성 니콜라우스는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이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조각을 만들었나보다.


그 아래엔 각국의 국기를 그려놓았다.
우측 상단에 내 나라 대한민국도 있길래 한 컷 담았다.


관련 설명.
알아서들 해석하시라.

교회 내부로 입장.


이건 누구지?


이건 또 누구지?


이건 또 누구야 ㅜㅜ
아는 게 없으니 뭐 그림 구경만 하는 꼴.

가운데는 지쟈쓰? 그럼 우측은 성모 마리아? 그렇다면 좌측은?
가운데 있는 캐릭터만 눈이 파진 걸로 보니 지쟈쓰 맞는 듯 싶다.


이건 뭐라고 써놓은 걸까.


성 니콜라우스가 선원들의 수호성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물이란다.


외부로 나왔다.
..가 바로 들어왔다.


이런 저런 벽화들.




개님이 더위를 피해 구석에서 잠들어 계신다.






좌측의 표지판은 다음과 같이 써있다.

이 명문銘文은 1862년, 교회 복구에 자금을 대준
차르царь Николай I Павлович에 의해 기증되었다.
[한 : 니콜라이 1세 파블로비치, 英 : Nicholas I]

이 글은 키릴 문자로 완벽한 고체 중세 러시아어로 작성 되었다.

스펠링 실수와 잘못된 글자로 가득한 명문銘文임이 지적되었기에
석재 조각가는 러시아어와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Hymn to the Saint
성인에 대한 찬가

"Oh, measure of faith and image of humility, oh teacher of abstinence,
reveal thyself to thy block that which is the truth of all thing for this reason hast
thou kept the lofty with humility, the costly with proverty.
Oh, father bishop nicholas, pray christ god for the, salvation of our souls."

라고 써있다.
이 찬가는 내 수준에선 해석 불가 ㅜㅜ


예배당인가.








이것은 성 니콜라우스의 석관.

유리막이 쳐져 있어서 팔을 위로 쳐든 뒤 사진을 남겼다.

러시아 관광객들이 좌측 하단에 손을 밀어 넣어 기도를 했다.
그래서 좀 하얗고 반질반질하다.

관련 사진 두 컷 더 올린다.


중단.


하단. 상기 두 컷 사진 작가 : Dick Osseman, 출처 : 여기

석관엔 성 니콜라우스가 잠들어 있었는데
이것에 관해 몇 마디 적어보자면..

26/8/1071,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Ρωμανός Δ' Διογένης는
[라틴어 : Romanus IV Diogenes, 한 : 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
셀주크 투르크의 술탄 الب ارسلان Alp Arslan와 Manzikert 전투에 직면했다.

전투는 굴욕적인 패배로 끝났고 Romanus 4세는 붙잡혔다.

그 결과, 비잔티움 제국은 일시적이나마
소아시아 지역 대부분에서 셀주크 투르크의 침략에 제어력을 잃었다.

Ἀλέξιος Α' Κομνηνός의 재위 기간 중에
[라틴어 : Alexius I Comnenus, 한 : 알렉시오스 1세 콤네누스]
비잔티움 제국은 소아시아 지역의 지배권을 다시 얻었다.

그러나 그의 재위 초기, Myra는 이슬람 침략자들에게 당했다.

혼란을 틈타 Bari의 뱃사람들은 정교회 수사들의 반대를 넘어
Myra에 그가 묻혀있던 교회로부터 성인의 유물을 가져갔다.

유물은 9/5/1087에 도착했다.

이것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데
몇몇 버전에선 유물을 취한 그들을 도둑 또는 해적이라고 했고,
다른 버전에선 그들은 성 니콜라우스 스스로 나타나
그의 유물을 임박한 무슬림들의 정복으로부터 보호를 위해 옮겨야 한다는
환각에 응해 그것들을 가져가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Bari에는 두 곳의 교회가 그를 성인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로마 카톨릭, 하나는 정교회이다.

Venezia의 전설에선 그의 유물 중 대부분은
Lido 섬에 있는 San Nicolò al Lido로 가져왔으며,
팔 하나만이 Bari에 남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1950년대에 Bari에 있는 유물의 과학적인 조사 결과,
Bari에 대체로 온전한 뼈대가 있음이 드러났다.

Venezia에 있는 뼈는 500여 개의 작은 조각으로 부숴져 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에 따르면 Venezia에 있는 것 또한 성 니콜라우스의 뼈라고 한다.
관련 이야기.

Myra의 성 니콜라우스의 유물에선 manna혹은 myrrh라고 불리는
장미수같은 냄새가 나는 깨끗한 물같은 액체가 흘렀다고 하는데
그것은 기적적인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 후 유물은 Bari로 가져갔고 유물은 계속 그같은 것을 했다고 한다.

28/12/2009 터키 정부는 이탈리아 정부에게
성 니콜라우스의 뼈를 터키로 반환해 달라는 공식적인 요청을 발표했다.

터키 당국은 성 니콜라우스 본인은
그가 주교로 있던 곳에서 살길 원했고
실제로도 그곳에 묻혔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들은 또한 그의 유물은 불법적으로 그의 고향에서 탈취되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유리막이 없는 2004년 사진.


이 그림은 성 니콜라우스다.
이교도들이 눈을 파냈을 것이다.


이건 성모일까?


밖으로 나오니 러시아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성 니콜라우스의 러시아 정교회 동상.



교회에 관한 정보를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이곳을 방문하자.

밖으로 나왔다.


요것도 성 니콜라우스 조각인 듯.


이 사진을 끝으로 Olimpos로 퇴각.


이 사진은 Olimpos로 진입하는 정류장.
그러니까 지난번에 포스팅 했을 때 적었던 길가에 뚝 떨궈주는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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